무기력했던 청년이 10년 암흑기 끝에 ‘유니클로’를 선보이기까지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 이야기

Tena • Hyeri Jo, Editor

  • 비즈 인사이트

오늘의 뉴스레터 ‘파는 사람들’은 인터뷰 대신, 한 기업가의 창업 스토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스기모토 다카시의 책 ‘유니클로’(한스미디어)를 참고해,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창업 스토리를 재구성했어요. 만사에 의욕 없던 청년은 어떻게 10년간의 암흑기를 거쳐 전 세계인에게 옷을 '파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0. 성공 이야기의 뒤편

‘앞으로 양장점 일을 계속 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괜찮은 걸까?’

1972년 일본의 작은 마을 우베. 야나이 다다시는 큰 의욕 없이 가업인 양장점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도련님’에게 반감을 가진 기존 직원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퇴사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10년은 ‘암흑의 시간’이었다.

이 무기력한 청년이 바로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다. 사실 그는 젊은 시절 그리 눈에 띄는 청년이 아니었다. 1972년 아버지의 '오고리상사'를 물려받았지만, 오랫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가 유니클로 1호점을 세운 건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1984년의 일이다.

그러나 유니클로의 일대기를 쓴 저자 스기모토 다카시는 이 지지부진한 10년이야말로 야나이 다다시의 본질을 형성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 가게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고민하며 답을 찾던 시간이야말로 이후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는 뜻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의 뒤편에 존재했던 기나긴 시간이야말로 경영자로서 야나이 다다시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단서이다.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암흑의 10년’이야말로 야나이 다다시라는 사람의 위대함이 응축된 시간이다.” (스기모토 다카시, ‘유니클로’ 저자)

과연 이 시간은 어떻게 유니클로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됐을까. 스기모토 다카시의 ‘유니클로’에는 장대한 유니클로의 서사가 통째로 담겨 있으며, 유니클로가 스케일업을 한 이후에 등장하는 실무진들과의 에피소드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다만 이번 콘텐츠에서는 딱 야나이 회장의 창업기만을 집중해서 다루려고 한다.

1. 도망칠 수 없다는 책임감

대학생 시절 야나이 다다시는 하숙집 주인으로부터 ‘잠꾸러기’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게으른 청년이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야나이를 슈퍼마켓 체인 ‘자스코’에 입사시켰지만 역시나 9개월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세계 여행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하던 그는 결국, 우베에 돌아와 가업을 잇게 된다.

이 시절의 야나이는 한량처럼 세계 여행 다니고 놀다가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은 스물 셋 백수 도련님(!)이었다. 실제로 오고리 상사의 직원들이 느끼는 야나이의 인상도 그랬다. 문제는 이 도련님이 조용히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나이가 잠시나마 몸을 담았던 자스코는 당대 일본 소매업 최첨단 기업이었다. 동네에서 영업하던 작은 가게의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야나이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했다. 결국 야나이가 자신들의 근무 평가까지 하게 되자 줄줄이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고리 상사를 맡은 이후, 야나이에게도 최초의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그 일은 정말이지 가슴을 푹 찔렀어요. 그렇지 않다면 이상하죠. 그때 아무래도 저는 (경영자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창업자)

사실 젊은 시절 야나이는 오고리 상사를 맡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맡게 된 이후로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야나이는 이 시기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 중 하나로 아버지 히토시가 은행 통장과 인감 도장을 건네주었던 일을 꼽는다. 그 통장에는 히토시가 평생 모은 예금이 담겨 있었다.

“그건 ‘상인으로서의 목숨을 네게 맡기겠다’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각오는 했지만, 통장을 받은 순간 이제 도망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2. 나가야만 한다는 절박함

암흑의 시기. 야나이는 유일한 직원 ‘우라’와 함께 묵묵히 가게를 꾸려 나갔다. 다행히 경영이 조금씩 정상화되기 시작했고 직원도 더 뽑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익 면에서는 항상 아슬아슬했다. 비즈니스 구조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고리 상사가 취급했던 신사복은 단가는 높지만 회전율이 좋지 않았고, 극도로 노동 집약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오고리 상사는 상대적으로 서비스에 품이 덜 드는 캐주얼 의류도 취급하긴 했지만, 캐주얼의 경우에는 제조사가 가져가는 금액이 너무 높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베의 유동 인구가 줄어들고 있었다. 오고리 상사가 위치한 우베는 한때 석탄 채굴 산업으로 번성했던 도시로, 한때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하지만 야나이가 오고리 상사를 맡은 1970년대에 사람들은 더이상 석탄이 아닌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다.

야나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매년 같은 일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주변의 다른 상인들을 보면서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야나이는 퇴근 이후에 꼬박꼬박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해외 출장도 다녀오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결국 훗날 야나이가 찾은 유니클로의 해법은 모두 이 시간에 보고 들은 내용에서 나왔다.

변두리에 있기에 못 나간다는 마음이 아니라 변두리에 있기에 나가야만 한다는 마음. 유니클로의 시작에는 강렬한 절박함이 있었다.

“아무래도 우베처럼 정보가 제한적인 시골 마을에 있었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밖으로 열심히 (정보를) 찾아다니게 되잖아요. 도쿄에 있으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리고 어찌하다 보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서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물어보면 됩니다. 저는 그렇게 해 왔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3. 드디어 찾아온 해답

야나이가 공부했던 수많은 창업기 중에서도 유니클로의 등장에 영향을 준 것은 맥도날드 창업자 ‘레이 크록’의 이야기였다. 작은 햄버거 가게를 기반으로 매장 운영을 시스템화해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라는 새로운 업태를 만들어낸 신화. 야나이는 맥도날드 이야기를 보고 자연스럽게 ‘패스트 패션’의 개념을 떠올렸다.

“패스트푸드처럼 신사복을 ‘패스트 체인’으로 만들어 팔 수는 없을까? 아니 신사복보다는 캐주얼 의류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야나이 다다시)

야나이는 여기에 미국 출장에서 보았던 대학 내 생협 매장을 접목시켰다. 직원이 일일이 고객을 응대하지 않고, 고객이 알아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는 가게. 지금 보면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일본에서 ‘옷 가게’라고 하면 당연히 직원이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야나이는 모두의 상식에 반하는, ‘언제든 누구나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는 거대한 창고’라는 컨셉을 구상했다. 긴 시간 동안 ‘오고리 상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답을 갈구해 온 결과였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는 시도였지만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야나이에게는 확신과 용기가 있었다.

고뇌하던 나날 속에서 야나이는 훗날 성공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수첩 속에 그 말이 있었다. ‘Be daring, Be first.’ 인생의 전환점은 생각하기만 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기회가 내 손으로 굴러들어온다. 아니, 굴러온다기보다는 손을 뻗어 자신의 힘으로 움켜쥐는 쪽에 가깝다. (중략) 20대에서 30대 전반까지 암흑의 10년을 보내며 힌트를 찾아 헤맸지만, 답이 없는 질문과 마주한 10년과 드디어 결별할 시간이 찾아왔다. (스기모토 다카시, ‘유니클로’ 저자)

4. 가게에 오지 말아주세요

1984년. 야나이는 히로시마 우라부쿠로에 ‘유니클로 1호점’의 자리를 잡았다. 매장은 천장을 높고 개방적으로 만들고, 통로도 넓게 설계해서 창고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고객이 쉽게 옷을 고르는 분위기를 위해서였다. 매장에 쌓아놓은 3만 벌의 재고도 모두 1000엔에서 2900엔 사이의 파격적인 가격대였다. 새벽 6시에 문을 연다는 것도 특이한 포인트였다. 당시 오고리 상사의 직원들 모두 ‘독특하기는 하지만 과연 잘 될까’ 의아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오픈 당일. 6시가 가까워 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상품은 동이 났고, 쇼핑을 마친 손님들이 나가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이를 지켜보던 야나이는 라디오 방송국 취재에 응하면서 이렇게 호소했지만 역효과만 났다.

“지금 오셔도 매장으로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제 가게에 오지 말아주세요!”

근처에 숙소를 빌려 직원들을 재우면서 일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쏟아졌다. 야나이는 이때 ‘금맥’을 발견했다고 표현했다. 이후 야나이는 유니클로의 핵심이 ‘위치 선정’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교외의 대형 매장을 위주로 차례차례 점포를 열며 대박 행진을 이어 나갔다.

다만 훗날 야나이 다다시는 이 때의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저는 목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딱히 성장하지 못했어요.” (야나이 다다시)

남들이 보기에는 의아한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야나이 역시 일본 주고쿠(혼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30개 정도 매장을 운영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야나이는 우연한 계기로 ‘장사꾼’에서 ‘경영자’로 변모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겨우 한 권의 책이었다.

5. 끝에 닿기 위한 모든 것

헤럴드 제닌의 ‘프로페셔널 CEO(원제: Managing)’는 아주 유명한 책은 아니었다. 아냐이 역시 우베에서 그 책을 다 읽은 사람은 본인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야나이가 ‘프로페셔널 CEO’를 읽고 깨달은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 현실의 연장선상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

  •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경영은 그 반대이다. 끝에서 시작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책에 나온 내용은 그때까지 야나이가 살아온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야나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꾸준히 노력하면 보상을 받을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암흑의 10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헤럴드 제닌의 조언은 거꾸로였다. 무턱대고 노력하기 전에 끝을 먼저 정하고, 결론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접한 야나이는 그간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고 느꼈다.

야나이가 지정한 ‘끝’은 명확했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것. 그렇게 야나이는 ‘금맥’이라고 불렀던 캐주얼웨어 창고 모델에 만족하지 않고, 소매점이 상품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SPA로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 유니클로 1호점을 성공시키고 나서 3년만에 결심한 일이었다.

1991년, 직원들을 모아놓고 선언한 내용에서는 야나이의 각오가 더 잘 엿보인다.

“여러분, 이제부터 사명을 오고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으로 변경합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유니클로를 전국 체인으로 운영할 겁니다. 매년 30개씩 새로 매장을 냅니다. 3년 뒤에는 매장 100개를 넘어서고, 그 시점에 주식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당시 유니클로는 1호점 오픈 이후 7년간 차근차근 성장해 23개 매장을 낸 차였다. 즉, 야나이의 말은 지금까지의 실적을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매장을 늘려 나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일본 최고 기업을 넘어 세계 최고 기업으로 돌진하는 유니클로의 2막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6.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

누구에게나 어둠 속에 웅크려 있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암흑의 시간’이 사실은 그의 가장 위대한 면을 담고 있다는 문장은 위로가 된다. 실제로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에게 ‘암흑의 10년’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요한 질문에 집요하게 답을 쌓아 나가고, 먼 훗날 도움이 될 수많은 지적 양분들을 쌓는 시간이었다.

물론 야나이 회장은 ‘그 시절의 저는 목적이 없어서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확실히 야나이 회장이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방법’을 체득한 이후 유니클로의 성장세는 그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하지만 어쩌면, 반대로 암흑의 10년이 있었기에 유니클로가 더 폭발적으로 발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이후 유니클로 실무진들과의 에피소드를 볼 때 야나이 회장이 좌절과 실패, 정체의 시간의 가치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니클로’ 책의 후반부에는 사업을 크게 실패한 실무자에게 이렇게 격려하는 대목도 나온다.

“나는 실패하지 않은 유노키보다 실패한 적이 있는 유노키가 더 낫다고 생각해. 실패를 교훈 삼아 10배로 되돌려줘.” (야나이 다다시, 410p)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끝’까지 가기 위해 버티고 나아가는 것이다. 최소한 유니클로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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