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현지화의 상식을 깨다, 뉴욕 '기사식당'

기사식당 윤준우 대표 인터뷰

Tena • Hyeri Jo, Editor

  • 비즈 인사이트

이 콘텐츠는 채널톡 뉴스레터 '파는 사람들'에서 발행하는 콘텐츠입니다!

[목차]

  • part ⓪ ⋯ 맨하탄 한복판의 한글 간판 

  • part ① ⋯ 뉴욕의 한식 '레스토랑투어'가 되기까지

  • part ② ⋯ 뉴욕에서 '현지화'의 진짜 의미

  • part ③ ⋯ 1년간의 준비 과정

  • part ④ ⋯ 오픈 이후 마주한 반응들

  • part ⑤ ⋯ 팔아먹는 것과 이어가는 것의 차이

  • part ⑥ ⋯ 뉴욕 시장의 특징에 대해서

[말한 사람과 묻고 쓴 사람]

  • 말한 사람: 기사식당(Kisa) 윤준우 대표. 뉴욕 요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레스토랑 경영자.

  • 묻고 쓴 사람: 채널톡 조혜리 에디터: 스타트업을 취재하다가 스타트업에 왔다.

0. 맨하탄 한복판의 한글 간판

2024년 4월, 뉴욕 한복판에 문을 연 ‘기사식당(Kisa)’은 오픈 직후부터 화제가 됐다. 맨하탄에서도 미국인이 주로 사는 동네인 앨런 대로에서 한글 간판을 달고 백반을 파는 가게. 파격적인 시도였기에 창업자들조차 내심 걱정을 했지만 놀랍게도 가게는 첫 날부터 만석이었다.

오픈 전부터 뉴욕 타임스, 이터(Eater)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기사가 쏟아진 것은 물론, 2024년 말에는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14곳’ 중 하나로 선정되기까지. 그야말로 2024년 뉴욕에서 가장 핫한 식당이었다.

뉴욕 기사식당 외부 전경 (출처: 구글 맵)

한국에서 보기에 뉴욕 기사식당은 ‘마법처럼’ 저절로 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이들의 성공은 그리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기사식당 창업자들은 뉴욕 요식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왔고 이미 ‘씨 애즈 인 찰리(C as in Charlie)’라는 식당으로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된 적 있다. 오픈 전부터 기사식당을 소개한 미국 매체들은 모두 ‘씨 애즈 인 찰리의 창업자들이 만들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기사식당이란, 이미 한 차례 창업을 성공시킨 팀의 연쇄 창업이었던 셈이다.

(미슐랭 빕 구르망: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을 소개하는 미슐랭 어워드. 서울에서는 4만 5000원 이하로 식사할 수 있는 식당들을 소개하고 있다.)

'씨 애즈 인 찰리'를 언급한 뉴욕 타임스 기사 (출처: 뉴욕 타임스)

뉴욕에 이미 존재했던 파인 다이닝 한식당과는 다른, 캐주얼한 한식을 ‘타협 없이’ 제대로 선보였다는 점도 또 다른 포인트. 이번 인터뷰의 초안을 읽은 한 창업자는 ‘99%의 창업자는 브랜딩하는 과정에서 타협을 한다. 필연적으로 애매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기사식당은 타협하지 않았다.’라는 감상을 전했다.

모두가 한식을 해외에서 선보일 때에는 현지화가 필수라고 말하는 판국에, ‘맨하탄 한복판에 영어 한 글자 없는 한글 간판’이란 생각보다 큰 용기를 요하는 결정이었다는 뜻이다.

기사식당 윤준우 대표는 그간 여러 인터뷰에서 ‘진짜 한식’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혀 왔다. 첫 가게였던 ‘씨 애즈 인 찰리’의 퓨전 한식을 먹은 손님들이 ‘한식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다’라고 하는 걸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고. 

그렇다며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윤준우 대표와 기사식당 공동창업자들은 왜 손님들이 원하는 게 현지화된 한식이 아닌 ‘진짜 한식’이라고 확신했을까. 기사식당 윤준우 대표와 화상 미팅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 뉴욕의 한식 '레스토랑투어'가 되기까지

(레스토랑투어(Restauranteur): 요식업 전문 경영인)

뉴욕 요식업계에 발을 들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전형적인 한인 1.5세라고 보면 된다.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고등학생 때까지 애틀랜타에서 살았다. 당시 애틀랜타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세탁소, 델리, 샌드위치 숍 정도로 정해져 있어서 미국인 주류 사회에 들어갈 수 없는 한계를 많이 느꼈다. 큰 무대로 가고 싶은 마음에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했다.

뉴욕에 와서는 용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요식업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JYP 박진영 대표의 고급 바비큐 레스토랑 ‘크리스탈밸리(Kristalbelli)’에서 서버로 일하게 됐는데, 레스토랑이 문화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화려한 모습에 반해서 요식업계 일을 시작했다.

크리스탈밸리 실내 전경 (출처: 크리스탈밸리)

대표님은 셰프가 아니라 '레스토랑투어'라고 하셨는데.

레스토랑과 오너를 합친 말이다. 한국에서는 요리사가 개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레스토랑 사장이라고 하면 셰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레스토랑 경영자와 셰프가 따로 있는 경우가 더 흔하다.

2년 전에 첫 가게인 ‘씨 애즈 인 찰리(C as in Charlie)’를 열었다.

10년간 뉴욕 요식업계에서 일하면서 뉴욕에는 사람도 음식도 문화도 가치관도 너무 다양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가장 창의적인 게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딱 그 즈음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소감을 남겼는데, 그 말에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애틀랜타 출신 친구들과 함께 ‘가장 우리다운 것’을 풀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다. 이 ‘앤드(and)’ 파워를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식&미국 남부식(Korean&Southern), 두 키워드로 음식을 개발했다.

설렁탕 파스타(Oxbone Creme Pasta) (출처: 미슐랭 가이드)

어떤 음식들인지 소개해 주신다면.

이민자로서 겪은 순간들을 담았다. 그중 하나가 ‘옥스본 크림 파스타’(Oxbone Creme Pasta)로, 쉽게 말하면 ‘설렁탕 파스타’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왔을 때, 어머니께서 설렁탕을 만들어 주셨는데 소면을 구할 수 없어서 스파게티 면을 넣었던 기억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삼겹살이 없으니까 베이컨으로 쌈을 싸서 먹었다든가, 버터 간장밥을 해먹고 싶어서 버섯 비빔밥으로 대신했다든가… 이런 개인적인 추억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메뉴들이 독특하게 느껴졌는지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감사하게도 오픈 1년 뒤에는 미슐랭 빕 구르망에도 선정됐다.

2. 뉴욕에서 '현지화'의 진짜 의미

'씨 애즈 인 찰리'에 모인 운영자들과 고객들 (출처: 이터)

‘씨 애즈 인 찰리’에서 만난 고객들의 반응을 보고 기사식당을 창업했다던데.

고객들이 ‘이 가게에서 한국 음식을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다’고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점점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한국 음식을 먹어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 음식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면, 우리 가게의 경험이 한식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진짜 한국 음식을 접해보기를 바랐다.

한식을 더 현지화해서 보여주는 방향이 있고, 더 전통적인 한국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향이 있었을 텐데, 어느 쪽이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방향인지 어떻게 판단했나.

‘현지화’와 ‘전통 고수’가 대립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맛있고, 또 먹고 싶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전부다. 한식 전통을 고수해도 고객들이 감동받는다면, 먹는 순간 즐겁고 새로운 문화적 체험이 된다면 그게 뉴욕의 현지화가 아닐까.

아주 전통적인 음식을 보여줬는데 그게 동시에 현지화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뉴욕이라는 도시에는 그 방향성이 맞다. 다양한 문화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현지화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조금만 돌아다녀도 에티오피아 음식, 그루지야 음식, 레바논 음식 등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각 나라의 전통적 문화 자체를 보여주는 게 여기서의 '현지화'다.

한국 어느 기사식당의 밥상 (출처: 한국관광공사)

그렇다면 ‘진짜 한식’으로 노포, 기사식당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 고급 한식당 같은 것도 있을 텐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파인 다이닝보다는 허름한 식당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 아버지와 손 잡고 가던 기사식당이 아직도 그립다. ‘이모님’들이 편하게 대해 주고, 시끌벅적하고, 정감가는 분위기가 좋아서 한국에 갈 때마다 찾아다니곤 했는데 이제는 많이 없어졌다.

요식업계 이전 세대는 대부분 은퇴했고, 우리 세대는 서양 음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런 추세라면 다음 세대에는 과연 노포 음식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뉴욕이라는 세계의 중심지에 한국 노포 음식을 가져와 성공시킨다면, 이걸 멋있게 생각하고 따라하는 가게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으로 기사식당을 시작했다.

뉴욕에도 ‘정식당’처럼 유명한 파인 다이닝 한식당은 꽤 많았는데, 일부러 다르게 포지셔닝을 한 건지 궁금했다.

다르게 포지셔닝한 게 맞다. 뉴욕 음식 문화가 글로벌해서 시즌별로 유행하는 음식도 다르다. 예를 들어 코로나 직전에는 '페루비엔 재패니즈'라고, 일본 영향을 받은 페루 음식이 힙하게 여겨졌다. 지금 한식이 딱 그렇다. 미국인만 사는 동네에 가도 고추장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으니까 이제는 소박한 한국 음식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식이 힙한 음식 반열에 올랐다면, 유행이 꺼질까 불안하지는 않은지.

백반은 유행을 타는 음식이 아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잠깐 유행하고 마는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들도 매일 먹는 음식이니까.

3. 1년간의 준비 과정

기사식당의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애틀랜타 출신 친구들, 이코베 작가, 김용민 파트너까지 모여서 1년간 ‘진짜 한국 기사식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서 만들었다. 처음 기사식당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이후 어울리는 자리를 고르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컨셉도 오픈 직전까지 계속 고민했다.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기사식당을 가져와야 했는데, 각자가 생각하는 기사식당이 다 달랐다. 하나의 컨셉으로 녹여내기까지 논의를 정말 많이 해야 했지만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컨셉과 달라진 면이 있다면.

기사식당’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뇌리에 가장 깊게 박혀 있는 메뉴는 돈가스였다. 그런데 한식을 소개하면서 돈가스를 보여주면 미국인들이 헷갈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백반 문화에 좀더 비중을 두기로 했다.

뉴욕 기사식당의 메뉴들 (출처: 기사식당)

여러 반찬을 쟁반 하나에 담은 상차림이 백반치고는 특이하다.

실제로 부산에 있는 기사식당에 갔을 때 여러 반찬이 곁들여진 불백을 한 상으로 받았다.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만을 위한 한 상을 따로 받는 걸 좋아한다. 쟁반에 개별 세트를 만들어 주면 와우 포인트도 될 것 같고, 컨셉의 연결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 입장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메뉴로 느껴진다고 들었다.

한식의 장점은 반찬에 있다. 반찬의 개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고, 제철 반찬의 개념도 존재한다. 우리 식당도 반찬을 파는 가게라고 생각한다. 반찬이 그냥 사이드 디쉬가 아니라 요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 제철 음식 개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계절에 맞춰서 철마다 7가지의 반찬과 국을 바꿔서 내고 있다.

기사식당 반찬의 시계는 한국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한국은 모든 사람들이 계절마다 뭘 먹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미식에 민감한 나라다. 이런 면을 소개하고 싶었다.

준비할 때 한국 기사식당 조사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한국에 갈 때마다 전국을 돌면서 기사식당을 다녔다. 기억에 남는 건 광주의 한 기사식당이다. 기사들이 식당을 나가면서 물이나 커피를 통에 담아갔다. 그걸 보고 기사들은 항상 졸음과 싸우니까 통에 담아갈 정도로 커피를 많이 먹는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저 커피머신이 킥이겠구나, 생각했다.

'기사식당' 외부 전경 (출처: 구글 맵)

실제로 커피 머신은 리뷰마다 언급되는 킥이 됐다. TV, 달력, 옷걸이 등 디테일한 인테리어도 화제인데,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를 꼽자면.

간판이다. 한국 간판들이 재밌는 게, 글씨가 워낙 많다 보니 뭐가 진짜 가게 이름인지 모를 때가 있다. 우리 간판도 한 쪽에는 '동남사거리 원조 기사식당', 다른 쪽에는 '소문난 기사식당'이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우리 가게도 '동남사거리 기사식당', '소문난 기사식당', '뉴욕 기사식당' 등 다양하게 불린다.

간판 덕분에 더 화제가 된 것 같다.

일부러 뉴욕에서도 손꼽히게 큰 길인 앨런 대로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 그 자리를 보고 '맨하탄 한복판에 영어 한 글자 없는 한글 간판을 하면 얼마나 멋있을까,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생각했다.

기사식당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간판 덕분이라고 본다. 오픈 직전에 간판을 달고 나서 이틀 뒤에 한국에서 기사가 하나 올라오고, 그 뒤로 우후죽순처럼 기사들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거지, 놀람이 있었다.

기사식당에 대한 한국 기사들 (출처: 네이버 뉴스, 중앙일보 캡처)

우리는 고객이 천천히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처음에는 직원도 많이 고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 날부터 웨이팅 줄이 거의 두 블럭 가까이 세워졌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큰일났다, 싶을 정도였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물론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건 아주 감사한 일이다.

4. 기사식당에 대한 반응들

왜 초반부터 그렇게 기사가 많이 나왔을까.

한국 언론에서는 영어 없는 친숙한 한글 간판의 덕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 전부터 뉴욕 타임스이터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매체들에서 먼저 소개가 되고 있었다. 첫 번째 가게인 ‘씨 애즈 인 찰리’의 영향도 있었다. ‘씨 애즈 인 찰리’는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에서는 오픈 이후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되고 매체에서 자주 다룰 만큼 인지도를 쌓아왔다. 덕분에 두 번째 가게인 기사식당을 열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우리 행보에 관심을 보여준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뉴욕에서 기사식당이 그렇게 잘됐다는 게 그저 신기하다.

가장 큰 이유는 차별성이 아니었을까. 한식 자체가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기존 한식당, 한국식 고기집, 치킨, 핫도그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식당 컨셉의 백반집이 미국 시장에 처음 소개된 거다. 덕분에 많은 매체에서 신선한 시각으로 다뤄줬다.

기사식당 손님 줄을 살피는 윤준우 대표 (출처: JTBC)

기사식당 초반에는 하루에 몇 명 정도 왔나?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5시부터 10시까지 저녁 시간대에 192명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가게가 36석이다. 거의 5~6번 회전을 한 거다. 지금은 하루에 준비해 두는 음식 양이 정해져 있어서 저녁 시간대는 160~180명, 점심 시간대에는 120명 정도를 받고 있다.

원래 백반 식당의 장점이 회전율이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한식이 만드는 과정은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막상 만들고 나면 빠르게 차릴 수 있는 음식이다. 메뉴도 네 가지밖에 없고, 반찬이 한번에 같이 나오니까 회전이 말도 안 되게 빠르다.

기사식당 메뉴판 (출처: SNS)

메뉴에 대한 반응, 특히 나물 반찬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

나물의 반응은 매우 좋다. 한국 음식이 처음에 건강한 음식으로 알려지지 않았나. 리필 횟수도 닭강정, 떡꼬치 같은 반찬보다 나물이나 김치류 반찬이 더 많았다.

의외인 점이 또 있다. 점심에는 감자탕과 돈가스를 팔고 있는데, 처음에는 미국인들이 돈가스를 많이 먹고 한국인들이 감자탕을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였다. 한국인들이 돈가스를 많이 먹고, 미국인들은 거의 80%가 감자탕을 먹었다.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거다. 재밌고 신기한 사실을 많이 발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찬이 무료로 리필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어떤가.

요새 가장 큰 숙제인데, 욕을 먹더라도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료 리필을 했다. 그런데 미국인 고객이 일곱 가지 반찬을 전부 세 번씩 리필한 다음에, 박스를 받아서 싸 가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인식이 잘못 잡혔다고 느껴서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무제한 리필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한 사람에 세 번씩 무료 리필을 해 주다가, 최근에는 2 달러씩 소량의 금액을 받고 있다. 안 좋은 평가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한식이 계속 무제한 식당이라고 인식되면 다음 세대의 한식당들도 무제한으로 줄 수 있는 반찬밖에 내놓지 못하게 된다. 정성이 들어간 연어장, 닭강정, 삼색전 같은 반찬들 다 가치가 있는 음식이란 걸 알리고 싶었다.

2024년 미국 최고의 식당으로 기사식당을 언급한 이터 기사 (출처: 이터)

오픈 이전에 목표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그냥 '과연 뉴욕에서 기사식당 컨셉이 통할까?'라는 질문, 그리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에 사는 교민들에게는 집밥 먹고 싶을 때 가는 공간이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감사하게도 바랐던 바 이상의 반응을 받아서 보람을 느낀다.

가장 기뻤던 건, 미국 요식업계에서 가장 큰 매체인 '이터'에서 2024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14개를 뽑았는데 그중에 기사식당이 포함됐다는 거다. 한국 식당 중에서는 유일했다. 단순히 우리 가게가 올라가서 기분 좋은 수준이 아니라, 한국 식당이 '아메리카 베스트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다.

뉴욕이 아니라 '아메리카'다.

사실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시기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식이 사랑받고 있다. 이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사식당이 언론에 나오면서 악플도 많이 받았다. '그래봤자 한국 문화 팔아서 돈 버는 애들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비즈니스는 돈을 벌기 위한 거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음식을 하고 있다.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5. 팔아먹는 것과 이어가는 것의 차이

어떤 점에서 많이 바뀌었는지.

예전에는 요식업의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많이 봤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한국 음식을 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느낀다. 잘못했다가는 지금 사랑받는 한국 문화에 내가 누를 끼칠 수도 있다. 한식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 우리 가게에서 나쁜 경험을 하면, 한국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식 문화를 모티브로 비즈니스를 하는 데에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문화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역으로 문화를 이어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

‘고민의 양’이 아닐까. 원래는 기사식당 다음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 문화의 또다른 부분을 소개하려 했다. 분식집이나 배달 중국집 같은 것들. 그런데 마구잡이로 가져오는 건 악용인 것 같아서 잠깐 멈추었다. 정말로 한식 문화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제가 이 일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기 전까지는 오히려 한식을 또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음 컨셉은 오히려 한식이 아닌 다른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기사식당'의 메뉴들 (출처: 기사식당)

기사식당이 초기에 돈가스를 메뉴로 고려하다가 결국 백반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무엇이 한식인가'가 어려울 때도 있는 것 같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한식이란.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내 기준에 한식은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식재료와 조리 방법을 기반으로 한 음식'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돈가스나 나폴리탄 스파게티도 서양 음식을 가져와서 자신들의 음식으로 만들어 낸 사례다. 

'어떤 나라 음식'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현지에서 현지 식재료로 현지 조리 방법에 맞춰 만든 음식은 다 그 나라의 음식이 아닐까. 한국식 돈가스, 한국식 짜장면, 한국식 탕수육이 존재하는 거다. 현지에 오래 머무는 순간 그 나라의 음식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경계가 사라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6. 뉴욕 시장에 대한 조언

뉴욕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하고 싶다. 뉴욕에 가게를 낼 때 창업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기본적으로 한국보다는 창업 비용이 훨씬 크다.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임대료만 50석 규모 기준으로 월 2만 달러(약 3000만 원) 수준이다. 그만큼 매출도 높게 나온다. 벤치마크를 잡을 때 총 매출의 10~15% 정도를 임대료로 본다. 임대료가 2만 달러라고 해도 매출이 20만 달러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초기 비용은 정말 천차만별이겠지만 정말 대략적인 수치를 이야기하자면, 50~60석 규모 가게를 할 때 50만~70만 달러(약 7~10억 원)는 들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가능한 매출의 상한선도 높아서 잘하는 가게는 1~2년 안에 그 돈을 다 회수할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뉴욕의 기본적인 물가 자체가 높은 편 아닌가.

여기서는 두 명이 데이트 나가서 밥을 먹고 와인 한 잔 한다고 하면, 팁까지 해서 한 사람당 최소 60~80달러는 쓴다. 두 명이서 밥 먹었을 때 적게 나오면 120달러, 좀 먹었다 싶으면 200달러 나오는 게 익숙한 도시다.

처음 기사식당 관련된 기사가 한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 키워드가 '백반이 4만 4000원(32달러)'이었다. 그런데 뉴욕에서 최저 시급이 시간당 16.5달러고, 맨하탄의 평균 임금이 40달러 정도다. 여기서 32달러란 1시간 일해서 낼 수 있는 수준의 돈이라는 뜻이다. 뉴욕 현지 고객들은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기사식당' 실내 전경 (출처: 기사식당)

그밖에 뉴욕 외식 시장의 특징이 있다면.

한국 요식업계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한 시장인 것 같다. 뉴욕은 트렌드보다는 개인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느냐, 진실이 담긴 브랜딩이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뉴욕에서 뭔가 할 때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트렌디한 것보다는 본인에게 잘 맞는 옷을 찾는 게 좋다.

한국에서 식당을 하면 홍보를 하고 매출을 올리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온라인에 노출을 많이 시키는... 그런데 뉴욕은 그런 게 안 통한다고.

일단 그런 걸 싫어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미국의 푸드 블로거나 틱톡커, 인스타그램 푸디(foodie, 식도락가)들은 본인들이 찾아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냥 좋은 제품과 서비스와 공간을 만들어내면 다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시작을 반대로 해버리면 나중에 바닥이 금방 드러난다.

힙스터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뿌리를 되게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제가 갑자기 프랑스 음식을 한다? 다들 그 이유가 있어야 납득한다. 그냥 프랑스 음식이 좋아서 했다, 잘될 것 같아서 했다, 그러면 ‘진짜 스토리’가 아니라고 평가한다.

시장의 특징이 정말 다르다.

당연한 게, 한국에서는 이탈리안 이든 멕시코 음식이든 실제 이탈리아 출신, 멕시코 출신이 와서 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 경험을 해본 한국인들이 한다.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민자도 많지 않고. 그런데 뉴욕의 경우에는 그 나라 출신들이 다 있는데 내가 뜬금없이 이탈리안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기사식당' 메뉴판에 비친 창업자들 (출처: 기사식당)

뉴욕 시장이 ‘진짜 스토리’를 중시하는 곳이라면, K-푸드 열풍이 한국 기반을 갖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더 영향이 컸을 것 같다.

기회가 엄청 많이 열렸다. 지금 시점이 중요한 것 같아서 오히려 고민이 있다. 다같이 똑같은 코리안 바비큐, 프라이드 치킨만 내놓으면 대중이 질릴 수 있다. 한국 문화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지 않나.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이라고 하면 칼국수, 국밥, 감자탕 등 정말 많다.

일본 음식이 다양한 요소들을 차차 소개해 가면서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것처럼, 한국 음식도 깊은 헤리티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우리 세대의 요식업 하는 사람들이 좀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한식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요식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다음 세대 양성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요식업계에서 일했는데, 사실 요식업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막 찬성해 주지는 않는다. 보통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을 원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가게에도 아르바이트하는 한국인 젊은이들이 많은데, 요식업에 확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잠깐 아르바이트만 하고 떠난다.

그런데 요식업은 충분히 직업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공부가 체질은 아니고, 레스토랑을 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식업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길을 여는 데 좀더 집중해 보고 싶다. 이건 우리 팀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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