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게 가장 재밌던 철수저 3세, '쇠테리어 끝판왕' 브랜드를 만들다

레어로우 양윤선 대표 인터뷰

Tena • Hyeri Jo, Editor

  • 비즈 인사이트

이 콘텐츠는 채널톡 뉴스레터 '파는 사람들'에서 발행하는 콘텐츠입니다.

[미리보기]

  • part ⓪ ⋯ 타고난 '파는 사람'

  • part ① ⋯ 스물 여덟에 깨달은 철수저의 운명

  • part ② ⋯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 part ③ ⋯ 철이라는 문제, 철이라는 기회

  • part ④ ⋯ 브랜드는 고객이 만든다

  • part ⋯ 좋아서 시작한 사업이 커지려면

[말한 사람과 묻고 쓴 사람]

  • 말한 사람: 레어로우 양윤선 대표. 철수저의 운명을 받아들여 철제 가구를 만들고 있다.

  • 묻고 쓴 사람: 채널톡 조혜리 에디터. 스타트업을 취재하다가 스타트업에 왔다.

0. 타고난 '파는 사람'

“사업 DNA가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때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열심히 했다. 돈 버는 일에 재미는 확실히 느꼈던 것 같다.”

창업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종종, 아주 비범한 대목에서 딱히 특별한 비결은 없다는 식의 대답을 듣곤 한다.

레어로우 양윤선 대표가 그랬다. 무려 20살 때 당대 최고 ‘얼짱’에게 무턱대고 연락해서 쇼핑몰 동업을 시작하고, 그 쇼핑몰을 키워서 매각하는 데 성공하고, 그 돈으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어떻게 사업을 할 생각을 했냐,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할 생각을 했냐, 어떻게 처음 해 보는 사업을 직원 5명을 거느릴 정도로 키웠냐… 쏟아지는 질문들은 ‘그냥 열심히 했다’는 대답 앞에 턱 막혔다. 그야말로 타고난 ‘파는 사람’ 그 자체였다.

(출처: 레어로우)

그녀의 또 하나 독특한 점은 3대째 ‘철수저’라는 배경이다. 할아버지는 철물점, 아버지는 철 공장, 딸은 철제 가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투박한 야성미(?)가 넘치는 브랜드일 것 같지만, 전혀. 레어로우는 ‘컬러 맛집’에 ‘감성 쇠테리어’ 브랜드로 유명한 감도 높은 브랜드다. 인테리어에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이 브랜드의 매출은 무려 100억 원 규모.

겉보기에 레어로우는 수완 좋은 사람이 금방 키워낸 브랜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철수저의 운명 때문에 마주한 ‘철제 가구’라는 아이템은 타고난 장사꾼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지난 11년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이 콘텐츠는 2025년 5월 발행된 채널톡 유튜브 '스몰톡라운지' 인터뷰와 사전 미팅 내용 등을 한데 엮은 내용이다.)

1. 스물 여덟에 깨달은 철수저의 운명

3대째 ‘철수저’라고 들었다.

할아버지가 을지로에서 철물점을 운영하셨다. 아버지도 철물점에서 지게로 철물을 나르는 것부터 일을 배우셨는데, 그걸로는 먹고살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양주에 공장을 세우셨다.

1970년대에 양주에 있는 철제 공장은 아버지의 공장뿐이었다. 대부분은 인천에 모여 있었다. 외주 가공을 맡기기 어려우니까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인프라를 점점 늘리다 보니까 철 자재부터 완성품까지 다 다룰 수 있는 공장이 돼버렸다. 사실 우리나라는 모든 산업에서 외주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보니까 무언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공장이 별로 없다. 아직도 국내에 그런 공장이 몇 개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출처: 심플라인)

어릴 때부터 철로 무언가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았나.

그때는 아빠의 공장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어릴 때에는 딱히 꿈도 없었다.

장사에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이미 쇼핑몰을 키워서 ‘엑싯’을 했다고.

대학생 시절, 너무 심심해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국내 패션 산업이 활성화되던 시기다. 밀리오레, 두타, APM 같은 동대문시장 상가를 놀러다니면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싸이월드에 ‘디카’로 사진을 찍어 올려서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 온라인 상거래법도 없던 때다.

아파트 계단에서 옷 사진을 한 장씩 찍어서 싸이월드에 올리다가, 모델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TV 프로그램에 한 ‘얼짱’이 나오는 걸 보게 됐다. 그 사람에게 무턱대고 싸이월드 쪽지를 보냈다. 나에게 자금 500만 원이 있고, 디카 촬영 기술도 있으니 만나 보지 않겠냐. 다행히도 답장이 왔다.

(출처: 카페 파스쿠찌)

명동 파스쿠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20살, 그 친구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엄청 허세를 부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정말 유명한 얼짱이어서 쇼핑몰이 잘됐다. 새벽에 옷 떼러 나가고 검은 봉다리 끌고 다니는 생활을 1년 넘게 했다. 직원도 5명 채용하고 사무실도 얻었다.

다만 사업을 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부모님도 공부에 때가 있다면서 학교에 가기를 권하셨다. 마침 쇼핑몰 인수 제안이 와서 정리를 하게 됐다. 미국 유학 가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부모님은 그때 ‘얘는 뭘 해도 될 애구나’ 하고 나를 인정해 주셨다.

20살 때 어떻게 그런 사업을 할 생각을 했나. 사업 DNA가 있었던 걸까?

지금 보면 그렇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 때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다.돈 버는 일에 재미는 확실히 느꼈던 것 같다.

미국 유학을 가서는 뭘 했나.

처음에 갔던 뉴욕은 정말 문화예술의 도시였다. 공원에 가도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나도 그 분위기에 심취해서 지내다 보니 좀더 적극적으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어졌다. 미술 학원에 등록하면서 공간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됐고. 돌이켜 보면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흘러왔다.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나니까 스물 여덟 살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는데, 아버지가 ‘이거 다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것들인데?’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양주에 출근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철제 가구를 만드는 줄은 몰랐다. 내가 그림으로 그리던 것들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던 거다. 그걸 스물 여덟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2.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때부터 철제 가구 관련된 일을 시작한 건가.

아버지 공장에 가서 가구 만드는 걸 봤다. 기계들이 쿵쾅거리고 직원들이 땀 흘리면서 일하고 불꽃이 튀고... 되게 압도당했다. 그때 제조업에 매료됐다. 디자인과 제조를 구분하면서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냥 만드는 건 되게 재밌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공장에서는 백화점에 납품하는 가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ODM이다. 나도 일부 브랜드를 맡아서 일하기 시작했다.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가 막 생길 때였는데, 매장에 들어갈 가구의 도면을 치고 납품을 하면서 현장 일을 배웠다. 패션 브랜드 매장에 가 보면 모듈로 된 벽 선반이 진짜 많다. 그 모듈 선반 만드는 걸로 일을 시작했다. 3년 정도, 꽤 오래 했다.

(출처: 에잇세컨즈)

지금의 레어로우도 모듈 선반이 주력이니까, 그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셈이다.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사실 B2B로 대기업에 가구 납품하던 시기에 많은 걸 배웠다. 대기업 담당자들이 최신 유행과 시장 트렌드를 정말 깊게 조사해서 필요한 제품의 기획안을 만들어 왔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주다 보면 공부가 됐다.

다만 배우는 건 많아도 ‘우리 것’이 없었다. 계속 자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온 게 ‘시스템 000’이라는 조명 시스템 선반이다. 모듈 선반의 기본 소양인 튼튼함, 이동성은 물론이고 조명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제가 생각해도 잘 만들어진 제품이다.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베스트셀러인 제품이다.

(출처: 레어로우)

선반에 조명을 다는 게 핵심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사용자의 니즈를 알아야 솔루션을 줄 수 있다. 매장에서 벽 선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니까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서 조명을 설치해 가면서 쓰고 있었다.

마침 당시에 협업을 많이 하던 아모레퍼시픽 담당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화장품이 반짝반짝 빛나 보여야 하니, 조명이 달린 선반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운 제품이다. 낮에는 광량을 높이고 밤에는 광량을 줄일 수 있어야 했고, 선반을 이동할 때 조명도 같이 이동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 아리따움에 납품했던 제품을 발전시켜서 B2C 제품으로 만들었다. 그 제품을 시작으로 B2C 시장에 들어왔다.

매장의 철제 벽 선반을 집에 가져올 생각은 사실 하기 어렵다. 벽 선반을 B2C로 판매할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철제 가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집에 철제 가구를 들여놓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해외 브랜드는 사무용, 가정용, 매장용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공간별 가구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브랜드도 확실하게 나뉘는 편이다. 그게 오히려 신기했다.

3. 철이라는 문제, 철이라는 기회

초기에는 철제 가구가 자연스러운 거라고 알리기 어려웠을 것 같다. 딱 B2C 시작한 직후에 어땠는지.

처음에는 리빙 디자인 페어에 작은 부스로 나갔다. 우리처럼 철제 가구에 컬러 칠해서 나오는 브랜드가 없어서, 작은 부스였는데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멀리서 '예쁘다, 저거 뭐야?' 하면서 다가와서는, 딱 손을 댔는데 차가우니까 '어머, 이게 뭐야?'하고 놀라곤 했다. '철을 어떻게 집에 둬요?'라고 하면서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철이 문제면, 나는 철수저인데 어떻게 하지? 철 말고 다른 소재로는 못 만드는데.’ 그래서 철이 위험하지 않고, 튼튼하고, 세련되고 매력적이라는 메세지를 어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목재 가구보다 다양한 컬러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어필하고. '스틸 얼라이브'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철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철제 가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너무 어렵기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철제 가구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 같다.

국내 철제 가구의 서사에는 이케아가 있다. 2018년, 2019년 즈음에 이케아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워낙 저렴하고 좋은 물건을 많이 파니까, 가구 업계에서는 ‘우리 물건은 이제 안 팔리겠다’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이케아가 들어온 게 잘된 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적당한 금액에 집 꾸미기를 해볼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줬고, 철제 가구를 집에 놔도 예쁘다는 걸 보여줬다.

지금은 ‘미드센추리’ 트렌드도 유행하고 있지 않나.

미드센추리 덕도 많이 보고 있다. 그것도 한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이런 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우리는 계속했을 뿐인데 운 좋게 미드센추리, 쇠테리어 같은 트렌드를 만났으니까. 그간 쌓아온 것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면도 있겠지만, 우리 같은 작은 브랜드 하나가 이런 큰 흐름을 끌고 오기는 어렵다. 이제는 사람들이 어떤 가구가 좋은 가구인지, 나의 취향에 맞는 가구인지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4. 브랜드는 고객이 만든다

철제 가구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잘 될 거라고 계산해서 한 것도 아닌데 힙한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는 고객이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누군가는 답을 정해놓고 브랜드를 시작하기도 할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없었다. '이 회사의 미션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그냥 가게로 시작해서, 잘 팔리는 걸 발전시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컬러 맛집’이라는 키워드도 그렇다. 우리는 철제 가구라서 어쩔 수 없이 색을 칠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화이트, 블랙 만들고 나서 색 한두 개 더 해본 거다. 노란색 하나 칠했는데 리뷰가 '컬러 맛집'이라고 달렸다. 컬러가 두 가지밖에 없는데? 그래서 정말로 컬러 맛집이 되기로 하고 컬러를 열 가지, 스무 가지씩 냈다. 지금까지 이런 식이었다.

리뷰를 많이 볼 것 같다.

잠들기 전까지 리뷰를 본다. 이제는 덜 봐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좋은 이야기가 90%라고 해도, 나쁜 이야기 10%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니까.

작은 회사였을 때에는 VoC를 보고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어떤 리뷰에 '노란색이 있었으면 노란색을 샀을 텐데'라는 멘트가 있으면 다음 날 회사에 가서 바로 '노란색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무언가 시도해 보자고 하면 3개월 뒤에야 가능하다. 나쁜 건 아니다. 나 혼자 리뷰 한 편 볼 때마다 결정이 휙휙 바뀌면 안 되는 거니까. 회사가 커지다 보니 확실히 VoC도 선별할 필요가 생겼다.

이제는 VoC를 선별하나?

최근에 결심을 하나 했다. 한동안 컬러를 다양하게 출시했는데, 정작 화이트, 블랙만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들이 분명히 컬러 맛집이라고 해 주었는데 왜 화이트랑 블랙만 구매할까?’ 혼란스러웠다.

몇 년간 투자와 브랜딩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언젠가는 분홍색이 팔릴 거야, 언젠가는 빨간색이 팔릴 거야, 하면서. 신제품을 기획할 때마다 '이제 진짜 빨간색은 그만 하자'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컬러 맛집'의 위상에는 빨간색이 꼭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 운영이 우선순위라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는 컬러를 많이 정리할 예정이다. 모든 컬러를 상시 판매하는 게 아니라, 일부 컬러는 시즌별로 판매할 거다. '지금은 노란색을 주문할 시즌입니다' 하고.

(출처: 레어로우)

브랜드를 오래 운영하다 보면 끊임없이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나가게 될 수밖에 없겠다.

레어로우도 처음에는 예쁘고 특이하고 세상에 없는 디자인을 하자, 그게 기준이었다. 그런데 브랜드를 운영하고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책임감이 느껴졌다. 공장에 가 보면 제품 하나 만들 때마다 그 이상의 쓰레기가 나온다. 우리 디자인이 그만큼 특별한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삶에 솔루션을 주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단순한 테이블이 아니라 멀티탭이 숨겨진 공간이 있는 테이블이라든가, 수납과 충전 기능이 탑재된 트롤리라든가, 전면은 화이트보드고 뒷면은 타공판인데 수납도 되는 파티션이라든가.

5. 좋아서 시작한 사업이 커지려면

인생 여정을 보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사업을 해왔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돈을 벌고 싶은지, 그 일이 좋아서 창업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두 가지 경우의 결이 완전히 다른데, 감히 말씀드리자면 전자에 속하는 창업자가 사업을 좀더 잘하는 것 같다. '나는 돈을 벌 거야' 이게 확실한 사람들. 좋아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템을 버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업은 꾸준히 영위하기 위한 거 아닌가. 아이템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게 맞나 싶다.

디자인 브랜드들은 좋아서 시작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013~2015년 즈음이 우리나라의 브랜드 르네상스 시대다. 이때 생긴 브랜드가 정말 많다. 국가적으로 창업을 밀어주던 시기였다. 지금 이 브랜드들의 고민이 다 비슷하다. 다들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브랜드를 런칭했는데, 이제는 차별점을 만들기 어렵다는 거다. 예전에만 해도 국내에 디자인 브랜드라는 게 별로 없었고 패키지가 조금만 예뻐도 감도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컬리에서 달걀을 시켜도 예쁘게 온다.

이제는 경영을 잘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디자인을 전공해도 창업을 하면 엑셀을 보게 된다. 숫자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저도 예쁜 거 만드는 게 재밌고, 디자인이 좋아서 시작했다. 그래서 숫자 이야기 하면 피하고 싶어진다. 항상 배우면서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숫자를 보는 걸 잘 하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레어로우의 실적은 경영을 못 했다면 도달하지 못할 숫자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인테리어의 모듈화를 하고 싶다. 인테리어는 한 번 하면 옮길 수가 없다. 인테리어에 1억을 쓰더라도 고스란히 들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1인 가구는 이사를 정말 많이 한다.

내 집 아니라서 인테리어에 돈을 못 쓴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아쉽다. 가구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동산이 가장 큰 장벽이다. 레어로우의 고객층 중에 MZ가 많은데, 다들 '집 사면 꼭 레어로우 살게요'라고 이야기한다. 이것도 철제 가구처럼 나 혼자 어떻게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인식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한다.

마치 철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처럼 말인가.

일상 속 매 순간 좋은 경험을 해야 좀더 나은 자신이 되지 않나. 그렇게 치면 집이라는 공간은 정말 중요하다. 공간이 달라지면 휴식도, 식사도, 여가도 차원이 달라진다. 패션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가꾸었을 때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많이들 알게 되지 않았나. 앞으로는 내가 사는 공간이 바뀌었을 때 인생이 크게 바뀐다는 것도 많이들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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