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e • Eunji Lim, HQ People Team Lead
[CXC2020]고군분투 - 비전있는 사업가 편 중 해브해드 이승환 대표의 인터뷰입니다. 패션 브랜드의 성장 방정식을 넘어서는 비전으로 팬덤 기반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야기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해브해드는 유행을 바탕으로 빠르게 소진되는 패션산업의 소비 방식에 경각심을 갖고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거대 자본에 의한 유행으로 성장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 필요한 모습으로 자리잡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중이죠.
실제로 지금까지 최소한의 광고비로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해브해드의 가치에 공감하는 팬들을 기반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성공했거든요.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10,000명의 팬덤과 2,500명 규모의 커뮤니티를 탄생시켰죠.
해브해드는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하는 브랜드예요. 일반적인 의류 쇼핑몰과 완전 다른 방식으로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패션 산업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대형 브랜드의 물류 창고, 동대문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유행에 의해 소비되는 패션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옷들이 만들어지고 안 팔리면 그냥 버려지고 있었어요. 수 천 벌의 옷들을 직접 입어보면서 피부로 문제를 느꼈죠. 유행이 아닌 소비자의 필요에 의해 생산되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시는 거네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패션 산업은 유행으로 선도되는 시장이라, 초기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요.
패션이 유난히 유행을 많이 타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나요?
패션은 유통기한이 짧아요. 특히 요즘처럼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넓은 유통망으로 한 번 출시했을 때 다 유통시켜서 판매해야 하죠. 또 패션은 세그먼트가 상당히 세분화 되어 있어요. 취향, 체형, 나이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서 시장이 나뉘어요. 그러다 보니 유행을 통해 빠르게 팔아야 해요. 광고비를 쏟거나 연예인을 통해 유행을 만들어야 되는 거죠.
이승환 대표는 패션산업은 자본이 없는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임을 깨닫고 실험을 시작했다
넓은 유통망과 광고비, 결국 자본이 없으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인 거네요. 처음에 어떻게 시장에 접근하셨어요?
의류 제조 판매의 성장 공식이 있어요. 히트상품을 만들어서 수익을 낸 다음, 상품수를 늘리고, 그중에 스테디 셀러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히트상품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게 하는 거거든요.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접근하는 게 해브해드의 시작이었어요. 저희는 실험을 하기로 했어요. 1) 여러 상품을 실험적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2) 팬덤 기반의 결제 사이클을 만든 다음, 3) 거기서 만든 수익으로 또 다른 상품을 만드는 거예요.
왜 팬덤인가요?
우선 광고비가 없었고요. 저희 브랜드와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팬덤은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지거든요. 낭비없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가치에 동의하고, 유행이 아니라 애착이 가는 옷을 멋지게 입고 싶은 분들을 모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방식으로 팬을 모으기 시작했나요?
저희는 자선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대안을 만들고 싶은 상황이잖아요. 제가 가장 피하고 싶은 건 대의를 위해 불편하더라도 희생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낭비하지 않는다는 가치에 공감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걸 갖게 해주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조립하는 옷을 선보이게 됐어요.
조립하는 옷이라는 실험으로 팬을 모으기 시작한 해브해드
조립이요?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고객들이 있었나요?
원단, 단추, 카라모양 등을 직접 선택해서 옷을 만드는 식이었어요. 조립하는 경험을 준다는 것 자체가 인터랙션이 있어서 페이지 유지 시간이 길어지고 구매전환율도 높아졌죠. 광고를 돌리지 않고 매출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은요?
팬들을 모아서 같이 옷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해버'라는 이름으로요. 직원들끼리 옷을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요, 일주일 만에 아이디어가 나온 옷은 일매출 1억을 찍었는데 6개월 동안 준비한 옷은 300만 원 매출이 나오더라고요. 우리끼리 예측하는 게 의미없다는 걸 깨닫고 팬들에게 물어보기로 한 거예요.
팬들이 얼마나 모였나요?
사실 100명 정도만 모여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10,000명이 신청을 해주셨어요. 2,500명 정도의 해버들을 추려서 커뮤니티를 꾸렸죠. 패션 브랜드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없다 보니 많은 분들이 반응해주셨던 것 같아요.
엄청난 반응이네요. 참여율도 높나요?
단톡방이 있어요. 대화도 많이 하시고, 설문지를 한 번 보내면 70~80% 정도가 회신을 주셨어요. 사진도 많이 보내주시고요. 참여를 한 이유를 설문해보니까 좋아하는 브랜드랑 호흡하는 걸 즐기시더라고요. 커뮤니티에 참여하신 분들 중 32% 정도가 구매를 하세요.
해브해드의 팬인 '해버'들의 설문 응답률은 80%에 달한다
성공적인 커뮤니티 마케팅을 하셨네요.
가치에 공감해주는 분들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천 명이 아니라 한 명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더욱 깊이 소통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이벤트도 많이 열고 싶었어요. DDP에 공간도 빌리고, 연사까지 섭외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진행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요.
팬 분들이 어떤 가치에 공감해주셨던 건가요?
패션은 '멋'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유행에 따라 낭비하거나 사치하는 게 더이상 멋있지 않아요. 패스트 패션이라고 하죠. 유행을 따라가는 소비는 환경오염,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런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였던 거죠.
환경문제가 패션 브랜드에서 말하기는 조금 무거운 주제인데. 이런 비전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살 때 나이지리아에서 3개월 정도 방송국 인턴을 한 적이 있어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더라고요. 아프리카의 젊은 친구들은 경제, 통화, 기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니까 국가를 위해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검사, 의사, 은행원 같은 직업을 대부분 추구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사회에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의 기본 시스템은 갖춰져 있는데 너무 물질만 좇다 보니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안타까웠던 거죠.
사회에 대한 영향력 중 패스트 패션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도시건축학과를 전공했는데요. 도시설계라는 게,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설계하는 거예요. 사람들의 동선, 생활하는 환경 등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이다보니 괜히 버스타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다녔죠. 그러다 도시생활에 늘 함께하는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전부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니는 게 이상했거든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없으셨나요?
2020년의 목표가 두 달 마다 도시생활에 관련된 주제로 룩북을 선보이는 거였어요. 신학기나 회사 출근할 때 입기 좋은 옷, 모임에서 입기 좋은 옷, 자연을 즐기러 갈 때 입기 좋은 옷 같은 컨셉으로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코로나가 심각해지더라고요. 펜데믹 상황에서 외부 활동을 권장하는 룩을 제안할 수 없었어요. 공급 관리도 불안정했죠. 동대문에 확진자가 생겨서 공장이 쉬거나 원단 수급이 안 되었거든요.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긴 장마였어요. 저희는 상품 수가 몇 가지 되지 않는데 7차 리오더까지 갔던 인기 상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장마 때문에 예정된 선적이 들어오지 못한 거예요.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해브해드 이승환 대표에게 2020년은 기후변화의 문제를 체감한 한 해였다.
패션 업계에서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렇게 받을 수 있네요. 해브해드가 원래 말하던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강해지겠어요.
환경은 마케팅 트렌드가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하는 주제예요. 많이 사고 버리는 게 멋진 패션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계속 실험을 해 나갈 거예요. 다행히 해브해드는 작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큰 커머스와 다르게 이해관계자가 적어서 가볍게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많은 실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실험을 통해서 우리 브랜드만의 성장구조를 만들어 갈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저희는 지금까지 낭비없는 생산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계속 해왔어요. 그런데 고객 수가 늘어나고,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우리 브랜드에 애착을 가진 팬 분들의 고객경험을 못 챙기게 되더라고요. 생산의 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고, 생산라인을 리뉴얼했어요. 안정성을 바탕으로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사 브랜드를 탄탄하게 성장시킬 예정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직물 9,200톤이 폐기물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의류 폐기물은 재활용률도 1% 미만이고요. 유행이 선도하는 패션 시장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해 보여요. 고객과 소통하며 고객이 진짜 필요한 옷을 만들어 가는 해브해드의 실험이 더욱 안정적으로, 더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해브해드의 방식으로 패션 생태계가 조금씩 변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좀 더 안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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